▲ 일러스트 허인회 |
지난해 4월 사내 동료직원과 결혼식을 올린 30대 초반의 대기업 직장인 박모씨는 결혼 1년이 넘었지만 아직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 아파트 구매에 필요한 대출을 받기 위해서였다. 혼인신고를 미룬 박씨는 지난해 9월 서울 관악구의 한 아파트 전용면적 59㎡(25평)를 5억원 후반대에 구매했다. 당시에도 서울은 전역이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돼 대출이 40%까지밖에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박씨 부부는 혼인신고를 미룬 덕분에 각자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었고, 전체 집값의 70%가 넘는 약 4억원 정도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박씨 부부가 구매한 아파트는 현재 6억8000만원을 호가한다. 약 9개월 만에 1억원 가까이 오른 것이다. 박씨는 “초등학교가 근처에 있는 아파트는 아니라서 아이를 낳으면 초등학교에 보내기 전까지 이곳에서 살 계획”이라고 말했다.
내년 2월 여자친구와 결혼을 앞두고 있는 30대 초반 직장인 이모씨는 지난해 11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금곡동의 한 26년 차 아파트 전용면적 59㎡(약 25평)를 6억5000만원에 계약했다. 결혼까지는 1년 이상이 남은 시점이었지만 신혼집을 먼저 산 것이다. 당시는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대책 이후 집값이 잠시 소강상태에 있을 때였는데, 이씨의 부모님이 “좋은 매물이 나왔다”며 “꼭 신혼집이 아니어도 투자 겸 미리 사놓았다가 결혼하면 들어가자”고 제안한 게 계기가 됐다. 집값 중 2억원 정도는 대출로 해결했고, 이를 제외한 자금 대부분은 부모님의 증여와 친척들로부터 빌린 돈으로 해결했다.
당시 분당은 투기과열지구에 해당했기에 이씨는 신혼집 매매를 위해 동원한 자금조달계획서를 제출해야 했다. 회사에 휴가를 내고 구청에 갔지만 “자료가 부족하다”며 보완 요청을 받기도 했고, 증여세 납부를 확인받기 위해 몇 차례 휴가를 더 쓰면서 관할 세무서를 오가야 했다. 이씨가 계약한 집은 6개월 정도가 지난 현재 7억6000만원을 호가한다. 약 6개월 만에 1억원 가까이 오른 것이다. 최근 상견례를 마친 이씨는 “이 집이 10억원이 되거나 재건축 관련 이슈가 생기면 팔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게 목표”라며 “그때까진 여기에 살 것”이라고 했다.
30대 신혼부부들의 ‘꼼수’
대다수의 30대는 부동산 실수요층으로 분류된다. 취업을 위해서, 결혼을 위해서 수도권에 임대든 매입이든 집 한 칸 마련하는 것이 최대 고민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부동산 시장에서 이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매우 크다. 혼자 벌어서는 매매는커녕 전세 살기도 버겁고, 청약제도는 이들에게 철저하게 불리한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지난 6월 17일 문재인 정부가 21번째로 발표한 부동산 정책을 바라보는 30대의 눈길이 더욱 따가울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일부 30대들은 혼인신고를 미루고 각각 대출을 받는 ‘편법’을 쓰거나, 여유가 있는 경우 부모의 도움을 받아 아예 결혼 한참 전부터 신혼집을 먼저 매수하는 등 정부 규제를 피하기 위한 해결책을 강구해 왔다. ‘규제가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부동산 시장의 오랜 명제를 확인해주듯, 투기꾼도 아닌 30대 젊은층들이 나름의 ‘꼼수’로 규제 일변도 정책을 피해 왔다. 이마저도 안 되는 이들은 천정부지로 오르는 집값을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하지만 나름의 해결책을 강구해서 집을 사려는 30대들도 정부의 규제 일변도 정책으로 자꾸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고 있다.
국토부의 이번 6·17 대책을 두고 특히 무주택 30대들의 원성이 높은 이유는 김포, 파주 등 일부 접경지를 제외한 수도권 대부분의 지역이 최소 조정대상지역 이상으로 편입됐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의 부동산 규제지역은 크게 조정대상지역(1단계 규제), 투기과열지구(2단계 규제), 투기지역(3단계 규제)으로 나뉜다. 후자로 갈수록 대출, 청약에 규제가 많아지고 강해진다. 이 중 투기지역은 현재의 투기과열지구와 합쳐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단계 규제지역인 조정대상지역의 규제는 여럿이지만 크게 대출규제를 포함해 청약에서의 가점제 강화를 특징으로 한다. 예를 들어 조정대상지역은 전용면적 85㎡ 이하라면 일반공급 물량 중 75%는 가점제로 당첨자를 가린다. 투기과열지구의 경우 전용면적 85㎡ 이하라면 100% 가점제로만 당첨자를 선정한다.
서울·수도권에서 새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서는 주택청약종합저축에 가입해 일정 시간이 지난 뒤 청약 접수를 해야 한다. 신규 아파트 분양가는 일반적으로 주위 시세에 비해 최소 1억~2억원 정도 저렴한데, 이 때문에 최근 서울 수도권 웬만한 아파트의 청약 경쟁률은 수십 대 일에서 수백 대 일을 넘나든다. 서울 아파트값이 치솟기 시작한 2017년부터 대부분의 서울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기 위해서는 최소 50점대 이상의 높은 가점이 필요해졌다.
서울은 현재 전 지역이 투기과열지구로 묶여 있다. 경기도 과천, 성남 분당 등 수도권에서 일반적으로 선호되는 지역도 마찬가지다. 청약 점수의 경우 무주택기간과 가입기간, 부양가족 수로 가점을 산정하기 때문에 가입기간과 무주택기간이 짧은 30대는 가점제로는 사실상 투기과열지구나 조정대상지역 내 청약 당첨이 불가능하다. 이전에는 추첨 물량이 있어 낮은 확률이라도 당첨을 기대해 볼 수 있었지만 이제 그나마 존재했던 낮은 확률도 아예 없어진 것이다.
이번 6·17 대책은 청약만이 아니라 대출 규제 확대로도 무주택 30대들의 ‘내 집 마련’을 멀어지게 했다. 이번 규제를 통해 경기 양주·평택·화성·안성시 등이 새로 조정대상지역에 포함됐는데, 이 중 양주의 옥정신도시는 기존에 미분양관리지역으로 지정돼 있었다. 미분양관리지역이 하루아침에 ‘투기 우려 지역’이 된 것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전국의 미분양 아파트 물량이 많은 지역을 ‘미분양관리지역’으로 정해 매달 말 발표하는데, 경기 양주시는 지난 1월 미분양관리지역으로 지정돼 올 6월 30일 해제를 앞두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지난해까지 미분양관리지역이었던 인천의 검단신도시도 이번 발표를 통해 2단계 규제인 투기과열지구로 편입됐다. 비조정지역의 경우 집을 살 때 대출을 집값의 60%까지 받을 수 있지만 조정대상지역은 50%까지만 받을 수 있다. 투기과열지구의 경우는 40%까지만 받을 수 있고, 집값이 9억원을 넘어가면 추가분에 대해서는 20%만 받을 수 있다. 이 지역들은 그간 다른 신도시나 택지지구에 비해 집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내 집 마련’을 원하는 30대들의 접근성이 좋은 편이었다.
물론 정부는 신혼부부나 다자녀 가족 등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는 ‘특별공급’ 제도를 마련해 놓고 있다. 하지만 이 제도도 맞벌이 신혼부부에게는 ‘그림의 떡’인 상황이다. 이른바 ‘신혼 특공’은 3인 이하 가족을 기준으로 할 때 월평균 합산 소득이 약 667만원 이하여야 우선공급 대상이 되고, 혼인신고한 지 7년 이내여야 한다. 부부 중 한쪽이라도 대기업에 재직하거나 전문직이라면 아예 지원 자체가 불가능하다. 여기에 순위 내에서는 자녀 수로 경쟁을 하기 때문에 서울 등 인기 지역에서 당첨되려면 자녀가 두 명 이상 있어야 한다. 이 외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이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공급하는 ‘신혼희망타운’ 등이 있지만 분양형과 임대형으로 나뉘는 데다 면적이 전용 40~50㎡대 내외로 협소해 30대들의 수요를 유의미하게 분산시키지 못하고 있다.
5개월 연속 30대가 서울 아파트 최다 매입
이처럼 청약 시장에서 소외된 30대들은 서울 내 노후된 아파트 매수에 나서고 있다. 이는 통계로 증명된다. 지난 6월 23일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집계에 따르면 지난 5월 서울 아파트 매매 건수는 총 4328건이었는데, 이 중 30대가 29.0%인 1257건을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많은 숫자다. 기존 주택 매매 시장의 ‘큰손’이었던 40대(27.8%·1204건)보다 더 많다. 50대(17.8%·772건)보다는 두 배 가까이 많았다. 30대는 지난 1월부터 5개월 연속 40대보다 더 많이 서울 아파트를 사고 있다.
물론 앞서 언급한 이씨나 박씨처럼 서울·수도권 내 아파트를 신혼부부 때부터 자가로 소유하면서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여유가 있는 경우는 극소수다. 대부분은 월급을 저축해 한 푼 두 푼 집값을 모아가야 한다. 하지만 이들도 최근 수년간 폭등한 서울·수도권 아파트값을 보면서 불안감을 토로하는 상황이다. 웬만한 월급으로는 아무리 저축해도 서울 아파트값 오르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서울 강동구의 한 아파트에 현재 전세로 거주하고 있는 30대 초반의 맞벌이 직장인 신모씨는 “내년 9월이면 전세 만기인데 다른 지역으로라도 집을 사서 들어가야 할지 고민 중”이라며 “집값이 계속 오르니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여유가 있어도 같은 또래 30대들의 부동산 ‘베팅’을 회의적인 시각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내년 2월 결혼 예정인 경기도 성남 분당구의 직장인 정모(32)씨는 신혼집을 경기도 수원 광교의 오피스텔로 잡았다. 자가가 아닌 전세로 거주만 할 작정이다. 정씨는 혼인신고를 미루고 소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는 식의 대출)’을 하는 방법에 관해 “지금도 집값이 거의 ‘머리’ 아니면 ‘어깨’일 텐데 집을 사고 1억원 이상 오르지 않으면 취등록세 내고 나면 남을 게 없을 것 같다”며 “물론 자금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무리해서 대출을 일으키기보다는 집값이 좀 안정화될 때까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30대가 서울 아파트에 집착하는 이유
이들처럼 서울 수도권에서 신혼집으로 아파트를 고집하는 30대 신혼부부들을 두고 “우리 때는 빌라 단칸방에서 시작했다”며 타박하는 50~60대도 있다. 하지만 30대들에게도 할 말이 있다. 이들이 결혼도 하기 전에 아파트를 사는 등 주택 마련을 서두르는 이유는 바로 위 세대에 반면교사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30대 후반으로 결혼 7년 차 부부인 직장인 김씨가 대표적이다.
김씨는 앞서 언급한 이씨, 박씨와 대학교를 함께 다닌 바로 위 ‘선배’ 세대다. 김씨 부부는 결혼을 한 뒤 경기도 일산의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8월, 김씨 부부는 일산 집을 판 금액에 대출을 더해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에 전용 84㎡ 크기의 신축 아파트를 8억5000만원에 매수했다. 놀라운 건 정확히 1년이 지난 이듬해 여름 이 아파트의 실거래가가 12억5000만원이 됐다는 점이다. 1년 동안 아파트 값이 약 4억원 오른 것이다. 김씨 부부가 소유한 아파트가 있는 서대문구가 마포구와 함께 ‘마·용·성’이라는 이름으로 문재인 정부 부동산 폭등의 핵심지로 이름 붙여진 것은 이때쯤부터였다. 김씨는 “만약 당시에 집을 사지 않았거나 아현으로 옮기지 않았을 경우를 생각하면 아찔하다”며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현재 김씨 부부가 소유한 북아현동 아파트의 실거래가는 약 14억원에 달한다.
이처럼 바로 위 세대가 단지 서울 아파트를 샀느냐, 사지 않았느냐로 1년도 되지 않는 단기간에 보유자산 가치가 수억원 달라진 것을 눈앞에서 목격한 현재의 30대 초·중반은 소위 편법을 통한 ‘영끌’을 통해서라도 아파트를 사거나, 아니면 결혼하기 전부터 집을 미리 사는 등 ‘내 집 마련’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부 대책이 수요자들의 갈증을 해결해주지 못하면서 국토부 대책에 대한 불만은 들끓고 있다. 지난 6월 17일 발표한 국토부의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관리방안’ 보도자료는 조회수가 14만3000건을 돌파했다. 정부 보도자료로는 이례적인 숫자다. 항의성 댓글도 수백 개가 달렸다. 대부분 수도권 전역으로 규제지역을 확대한 것에 대한 항의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6·17대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규제 조정·철회를 요구하는 글이 60여건 접수된 상황이다. 정부는 추가 규제책을 예고하고 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6월 21일 취임 1주년 브리핑에서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며 “6·17 대책도 모든 정책 수단을 소진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